잡담과 정보의 사이

왜곡과 창작의 혼란 바보온달과 평강공주에 허구와 진실

게임코드프리 2018. 12. 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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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온달과 평강공주


창작 속 자주 등장하는 바보온달과 평강공주



어찌보면 성공적 스토리와 신데렐라의 남자버젼 혹은 아름다운 충심과 러브스토리에 감동하여

많은 이들에게 전해져 내려오는 바보 온달과 평강공주에 대한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정말 이것이 '역사'인가를 되짚어봐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 전체 스토리

6세기 고구려 25대 평원왕의 딸 평강은 어릴적부터 자주 눈물을 보여 별명이 울보 평강공주였고,

평원왕은 평강이 울때마다 그녀를 놀리며 


"네가 늘 울어 내 귀를 시끄럽게 하니 자라서도 사대부의 아내는 되지 못하겠으니 

바보온달에게나 시집 보내야 겠다"


라는 말을 자주 했다고 전해진다. 이후 평강이 혼기가 찰 무렵 귀족 가문에 시집을 보내려 했으나 

평강이 혼사를 거부하며 말하길


"대왕께서 항상 말씀하시길 너는 반드시 온달의 아내가 될 것이다 하셨는데 

무슨 연유로 말씀을 바꾸십니까? 필부(일반인)도 식언을 하지 않으려 하거늘 하물며 지존하신 분께서

말씀을 바꾸십니까? 저는 온달의 아내가 될 것입니다."


하였다고 합니다. 

이 말에 화가난 평원왕은 평강을 나가라 하였고 평강 역시 이에 굴하지 않고 독이 잔뜩 올랐는지 

값비싼 팔찌 수십여개를 팔꿈치에 숨겨 궁궐을 나서 온 장안에 소문난 온달의 집을 찾아 나섰고, 

당찬 평강은 온달과 어머니를 만나 온달의 아내가 될 것이라며 대뜸 절하며 온달이 어디있는지 물었습니다.

이때 배가고파 산에 올라가 느릅나무 껍데기를 벗겨 먹으려 하고 있는데 평강공주는 산까지 올라와 

온달에게 청혼하였고 어리둥절한 온달이나 어머니도 처음에는 거절했지만

고집있고 끈질긴 평강은 오랜 설득 끝에 온달과 부부의 연을 맺게 되고 이후 온달과 평광 부부는

자신이 가지고 나온 보석을 밑천으로 온달이 무인으로 성장 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온달이 출전한 사냥대회에서는 우수한 성적을 거두며 평원왕에 눈에 들게 됩니다.

이후 중국 북부를 통일한 북제의 무제가 고구려를 침공했을때에는 온달은 전투에 출전해 큰 공을 올리게 되고

왕은 비로서 온달을 정식 사위로 인정하고 '대형'이라는 벼슬까지 하사하게 됩니다.


인물 설명


(아차산은 아무 상관도 없는데 아단성과 이름이 비슷하여 동상까지 만듬)


  • 온달(미상~590년 사망)


온달은 고구려 평원왕때의 사람으로 용모가 못생겨 우스꽝스러웠으나 마음은 순수하였다.

집이 가난하여 항상 밥을 빌어먹으며 어머니를 봉양하였고, 떨어진 옷과 해진 신으로

거리를 왕래하니, 그 때 사람들이 그를 가리키며 '바보 온달'이 지나간다 라며 비웃음 당했다고 한다.

- 삼국사기 온달 열전 中 -


  • 온달의 성격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실제 머리가 나쁘고 바보이기에 바보라 불리운 것이 아닌,

어머니는 두 눈이 멀어 일을 하지 못하고 집안은 가난하여 먹고 살 길이 없었는데,

어찌나 가난했는지 평강공주가 찾아왔을때에도 나무 껍데기를 벗겨 먹으려고 산에 가있었으며

그토록 가난하면서도 귀한 약재를 발견해도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그의 형편을 감안해 그냥 주거나

적은 대가만을 받기도 하기에 추레한 몰골과 착한 성심으로 당시 사람들은 온달을 바보라 불렀다고 합니다.


  • 온달의 출신에 대해서(추론)

어느 자료를 찾아봐도 온달의 출신지 혹은 태어난 해에 대한 정확한 기록을 찾기 어려우며

이미 살고 있던 곳은 평양성이라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나마 가장 납득이 갈만한 내용인 5년동안 현장답사와 고증을 통해 추리했다는 온달전에서

그 내용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551년 돌궐의 대규모 고구려 침공 시기 포로로 잡힌 돌궐족의 한 갈래인 기기시족(키르키스족)인

고구려 내에서는 이민족 출신으로 이미 고구려는 계루부, 관노부, 소노부, 순노부, 절노부 등 5부족의

연합국가였고 평원왕이 왕위에 있던 6세기에는 남쪽 신라가 치고 올라오며 북쪽에선 북제가 압박을 가하는

위기의 상황 속에서 왕권의 강화를 위해 새로운 세력과 결탁 없인 왕권을 온전히 지키기 어려웠다는 추측입니다.

이때 포로로 잡혀 고구려에 정착하게 된 돌궐족들이 하나의 세력으로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고

돌궐족 중에서도 강력한 전투력을 가진 기기시족의 우두머리가 바로 온달이었다고 합니다.

삼국사기에 정확한 출신에 대하여 언급되지 않은 것도 당시 한족을 제외한 모든 이민족을 오랑캐로 여기던

중화주의에 입각하여 씌여진 삼국사기이기에 큰 공을 세웠더라도 온달의 출신성분에 대해서는 자세히

언급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그럴듯한 추론입니다.


  • 평강공주(출생 사망 미상)

오히려 가장 찾기 힘든 자료가 바로 평강공주에 대한 자료였습니다.

고집이 세다는 기록과 평원왕(평강상호왕)의 딸이라 하여 평강공주라 불리우게 되었다는 점. 

그리고 무명의 온달을 이름 높은 장수로 만들었던 일화정도만이 평강공주에 대해 알 수 있는 정보이며,

특히 언제 사망했는지에 대한 기록조차 없고 정치적인 위치에 의해 말년이 좋지 않았을 것이라는 추측만이 난무합니다.

영류왕과 평강공주는 남매이다 보니 642년 당시 생존했다면 연개소문 일당의 쿠데타 당시 

변을 당했을지도 모른다는 추측도 있습니다.

그런데 온달의 아들 온군(현)이 왕실 근위대장이었으며 손자인 온사문은 연개소문 최측근 장군이었는데....???

온달 보다 더욱 미스테리 한 인물이 바로 평강공주입니다.


설정은 아주 훌륭하다 그러나 뭔가 이상하다?


우선 온달이라는 사람의 정확한 출신지는 언급되어 있지 않으나 삼국사기에는 온달은 평강왕 시절의 인물이라고만

언급되어있습니다. 여기서 잠시 혼란이 온것이 왕의 명칭이 달랐기에 무슨 연유인지 찾아보았습니다.



우선 고구려 24대 왕과 25대 왕의 이름은 양원왕 (이칭 : 양강왕), 평원왕(이칭: 평강왕)이었고 

어차피 같은 이름이라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또한지 의문이 들었던 부분이 바로 이 내용은 또 사실일까? 하면서 궁금증에 

'김부식과 일연은 왜 - 정출헌 지음' 책에서 의아한 부분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 책에서 나온 온달전의 오류에 대한 내용들

- 고구려 본기를 비롯한 어느곳에도 온달이라는 이름은 물론 관련된 사건조차 발견 할 수 없다.

- 후주의 무제가 요동을 침공했을 때 온달이 혁혁한 공을 세웠다지만 혁혁한 전공은 고사하고
후주의 침공 사실 조차 기록에 없다.

- 평강왕의 뒤를 이어 양강왕이 왕위에 오르고 온달은 양강왕 때 전사하였으나, 평강왕은 양강왕의 아들이므로
아비가 아들을 계승하여 왕위에 올랐다는 어처구니 없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그래서 더욱 더 찾아보았습니다.


  • 책에서 나온 온달전의 오류에 대해서 알아봄

-첫번째 오류에 대한 반론



(이것은 원본을 좀 더 깨끗하게 만들어놓은 복사본이며 아래에 원본 이미지도 첨부)


요즘은 시대가 발달하여 조선왕조 실록이나 삼국사기들의 자료도 한국사 데이터베이스에 무료로 온라인 열람이 가능합니다.

이곳에 잔뜩 온달이라는 이름과 시대적 상황등이 묘사 되어있으며 다른 한국사에 대해 알고싶은 분들은

한국사 데이터 베이스에서 검색하시길 바랍니다.



- 두번째 오류에 대한 반론


후주의 무제가 고구려를 침입하고 이산 벌판의 전투에서 온달이 큰 공을 세웠다는 역사적 사실을 기록한

내용이며 아무리 한자를 모르는 사람이라고 해도 온달(溫達)이라는 글자 정도는 읽을 수 있을거라 생각됩니다.



- 세번째 오류에 대한 반론


삼국사기에는 양강왕이라고 되어있지만, 누가봐도 24대 왕인 양강왕은 시간대 상 맞지 않는 오류가 맞습니다.

그런데 삼국사절요 7권 590(경술)년조에는 "이 때에 이르러 태자 원(元)이 왕위를 이어받으니..."라고 되어있으며 

태자 원은 영양왕을 말하고 있고 역사학자들 역시 삼국사기의 오류이지만 다른 곳에서 제대로 묘사되고 있다고 말합니다.


가장 충격적인 허구의 내용



만화 신암행어사에 보면 온달과 평강공주의 스토리가 나오는데 만화이고 실제 역사를 그린 내용이 아니므로

충분히 허구의 내용들에 대해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습니다.

만화의 내용에서는 어릴적부터 몹시 병약했던 평강공주는 치료 도중 자신의 괴로움을 이겨내기 위해 허상을 만들어냈고

그 허상이 바로 가짜 오빠, 그리고 온달이었습니다. 온달과는 결혼 할 수 없는 이유는 사실은 친 오빠였고...

(뭐지 이  아침드라마 같은...)


자신을 겁탈한 것은 바로 가짜 오빠라는 둥 상당히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지만 모두 사실이 아니며 

이것을 진심으로 역사적 사실로 알고 있는 분들은 아무리 만화가 재미있어도 역사와 혼동하지 않길 바랍니다.

단행본에서는 온달과 평강에 대해 역사 왜곡없이 설명 페이지가 따로 있지만 웹툰에서는 그 내용이 빠져있기 때문에

이 페이지에서라도 다시 언급하게 되었습니다.


[평강공주의 실제 가계]

아버지 : 평원왕

남편 : 온달

친오빠 : 영양왕(고구려 26대 왕)


대체 무엇이 진실일까?


많은 사람들의 해석과 진실이 달라 자료를 조사하고 책을 읽어가면서도 점점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혼란스러웠습니다.


나를 혼란스럽게 한 책은 '상식의 반전101: 의심많은 교양인을 위한"책에서 보면


온달은 활쏘기와 말타기에 능한 무장이었고 공적이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대형'이라는 관직은 귀족이 아닌 이상

불가능한 직책이었기에 정식 사위로 맞아들이면서 영양왕대에서는 성을 내리는 사성의 관습에 따라


나라에 공을 세운 온달에게 고씨 성을 하사하였고 전쟁을 승리로 이끈 무공의 대가로 이름도 승으로 바꾸었다는

설명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고승 장군은 온달의 다른이름이며 갑자기 고승 장군이 등장에 대해 설명하고 있지만

실제로 온달의 사망추정 년도는 590년 그리고 영양왕이 즉위하기 시작한 것도 590년이기에 이름을 하사하고 


활약했다기에는 약간 아슬아슬한 느낌이 들며 완전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이미 초반부터 상부의 고씨 가문에 

출가시키려던 것을 평강공주가 이를 거절하였고 온달과 결혼하였는데 고씨 성을 받는다?? 

이 부분도 아이러니 하기에 쉽게 와닿지는 않습니다.



온달과 평강공주의 개인적인 의견과 생각들


최대한 역사적 고증과 자료를 찾아보며 얻어낸 개인적인 소감으로는 

실제로 온달과 평강공주는 사실적인 역사적 인물임에는 틀림없으며 다만 전설처럼 내려오는

이야기들은 국가적 영웅을 좀 더 다이나믹 하게 그리기 위한 허구가 완전히 배제되어 있는 느낌은 아니었습니다.

꽤나 많은 글들을 읽어보고 최대한 정리를 하였지만 부족한 부분이 많이 보이지만 왜곡과 허구를 

최대한 가려내려고 노력했으며

저의 생각들이나 조사한 자료들 역시 100% 정확하다고 신용하지 않기에 잘못된 내용이나 충분히 납득이 갈만한

내용을 악플이 아닌 정중히 제시해 주신다면 겸허하게 읽어보고 수정할 부분은 수정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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